비판 대 탈비판 2000년대 현대건축논쟁
차기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후보들은 사회, 정치, 경제, 각 분야 별로 저마다의 공약을 내놓으며 유권자들의 표심 공략에 나서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분야는 단연 부동산이다. 주택 수요는 치솟고 그에 따라 집값 또한 천정부지로 뛰어버린 상황이니, 국민의 시선이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에 집중되는 것도 그럴만하다.
그런데 후보들의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로건만 다를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모두가 ‘공급 확대를 통한 부동산 투기 억제’를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현 정권, 이전 정권, 그 이전 정권도 늘 비슷한 주장을 펼치며 주거 정책을 내놓았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정부가 총력을 기울였는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살 집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주거 정책의 전제부터 다시 세워야 하는 건 아닐까?
그 합리적인 의심에 힘을 보태 줄 책이 출간됐다. 아파트 가격 안정화에 초점을 맞춘 주택 정책이 아니라, 어떤 공간에 거주할지 고민을 담은 주거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20년째 아파트 탈출을 꿈꾸고 있다. 바로 ‘동네에 답이 있다’고 외치면서. 그는 지금이야말로 1인 가구, 밀레니얼, 커뮤니티, 공유 경제, 생활권 계획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며, 아파트가 아닌 동네를 해법으로 내놓는다. 동네는 이미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인 다양성, 골목 경제, 가로 활성화 등의 가치를 품고 있으니 그 불씨를 잘 살려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각종 법규와 통계 자료를 활용해 ‘동네’가 지닌 잠재력, 다시 말해 동네를 구성하는 다세대·다가구주택, 단독주택, 상가주택의 가치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의 새로운 용어를 제시한다. 바로 ‘중간주택’이다. 국내에서 기준이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는 ‘빌라’를 대체하는 용어로, 5층 내외, 약 200평 규모의 다세대·다가구주택을 통칭한다.
블록 크기가 500m 이상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평균 블록의 크기 50x100m의 ‘중간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을 만나기 어렵다. 외부 공간만 봐도 그렇다. 아파트 단지의 외부 공간은 대게 통과하는 ‘경로’에 불과하지만, 동네의 외부 공간은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장소’에 가깝다. 대부분의 중간주택 1층에는 상업시설이 자리하는데, 이러한 주거와 비주거의 용도 혼합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동네에 활력을 불어 넣으며,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듯 ‘중간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이곳에 ‘살’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놓치지 않는다. 90년대에 지어진 중간주택들은 정비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한 탓이다. 그 대안으로 기존 중간주택의 필로티 주차장의 용도 변경, 주거와 비주거의 용도 혼합을 통한 상생, 생활 SOC 확보,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다양성과 커뮤니티 조성, 나아가 이를 물리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과, 때로는 용적률, 건폐율 상향, 중정 구조 도입 등의 시도들이 수반돼야 한다고 얘기한다.
주거는 그 사회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저자가 말하는 ‘답’은 동네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회가 원하는 도시의 다양성,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를 읽어 새로운 산업을 성장시킬 기회가 바로 ‘중간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에 있다. 아파트가 점령한 도시에서 인구 변화, 새로운 가치관 등을 반영한 주거 대안과 그 가능성을 보여 준 것만으로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