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용산은 우리 땅이지만 함부로 밟을 수 없던 땅이었다. 용산의 역사는 곧 외국군 주둔의 역사로 점철돼 있었던 탓이다. 고려시대 몽골군의 병참기지도, 구한말 청나라 병력의 주둔지도, 청일전쟁 때 일본군의 상륙지도 모두 용산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핵심 군사시설로 활용됐고, 광복 이후에는 미군이 사용하다가, 1952년 정부가 미군에 용산기지를 공여함으로써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금단의 땅이 되었다.
그런 용산이 한 세기 만에 국민 모두에게 열린 공원이 되어 돌아왔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1991년 미군 이적지 활용방안 기본계획이 발표됐지만, 그렇다 할 진척은 이뤄지지 않은 채 꽤 오랜 시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공원화 사업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2003년, 한미정상회담으로 용산기지 평택 이전이 결정되면서부터다. 그리고 다시 20여 년이 지나서야 용산가족공원은 점차 제 모습을 갖추고, 서울 시민들을 위한 진정한 쉼터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다. 이곳에는 긴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숙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산공원의 활용 방안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가는 이가 있다. 5년간 서울시청 용산공원 담당 주무관으로 일했던 도시공학 박사 김홍렬이다. 용산공원에 대한 그의 경험과 고민과 제안을 갈무리한 책 ‘용산 미군기지와 도시산책’이 출간됐다. 용산기지가 한국 근현대사에 어떤 의의를 갖고, 부지 내 남아 있는 시설을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지 얘기하는 첫 안내서다. 책에는 1950~70년대 용산기지 사진 자료들을 포함해 최초 공개하는 용산 미군기지 내외부 및 주변 지역 사진 240여 점이 함께 실려 지금까지 용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용산과 그 주변에 남아 있는 일본군과 미군 주둔의 흔적, 외국 부대 점령 이전 용산의 역사, 그리고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으로 인한 개발 현장까지 마주하다 보면, 용산의 과거, 현재뿐 아니라 이곳의 미래에 대해서도 그려볼 수 있다.
“현재는 12만 평이나 되는 부지 그 어디에서도 미군기지로 활용되었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2020년 용산공원 조성지구로 편입되어 용산공원 기본설계 변경계획이 진행 중이다. 이 땅의 역사적 치유, 도시와의 연결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또한 저자는 서울시 주무관으로 일할 당시 ‘용산공원 시민소통공간:용산공원 갤러리’ 조성을 주도하고 시민들을 위한 용산공원 투어를 기획, 운영하였던 경험을 정리하여, 지역과 주제별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7개의 역사문화 산책길 코스로 소개한다. 책을 안내서 삼아 직접 걸어보며 쉽고 생생하게 미군기지의 역사와 용산공원을 경험해 볼 수 있다.
1코스는 용산기지 내에 남아 있는 일제와 미군 주둔의 흔적을, 2코스는 신용산 지역의 일본 사회화 과정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 3코스는 용산기지 북동측에 남아 있는 일제 침략의 흔적을 살펴보며 해방촌과 후암동, 조선신궁이 있었던 남산공원을 걸어본다. 4코스는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독립의지를 돌아보고, 5코스는 해방 후 미군과의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한 도시경관의 모습을 담았다. 6코스는 부군당을 중심으로 용산기지 동남쪽 일대를 걸으며 용산에 숨겨져 있는 민속문화공간의 이야기를, 7코스는 용산의 도시 개발과정과 버들개문화공원이 들어서며 문화역사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짚어보며 변화를 앞둔 용산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대학에서 건축을,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조경을, 박사과정에서는 공원과 도시를 공부한 저자는, 네 분야의 경계에 선 입장에서 용산기지 공원화 사업이 우리 사회가 성장할 사회적 자본이 되어야 한다고 전한다. 더불어 과거 ‘공장의 시대’에서 다가올 미래 ‘공원의 시대’로 변화해야 한다는 진심 어린 조언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오랫동안 용산 미군기지와 그 주변 땅의 역사를 새롭게 다져온 저자의 생생한 발걸음을 따라, 함께 산책을 떠나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