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글 전효진 차장, 정호연 기자 편집 조희정
현실과 허구, 진지함과 가벼움의 자장 속에서, 합성이라는 작법을 통해 독자적인 작업들을 보여줘 온 사진작가 강홍구. 그가 201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소장자료 기획전 “서울: 서울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강홍구의 서울”이 오는 8월 4일까지 열린다.
미발표 초기작을 포함한 88점의 작품과 125점의 자료로 꾸려진 전시로,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와 ‘기록에서 기억으로’, 총 두 섹션으로 구성된다. 타이틀에서 미루어 짐작 가능하듯 주제는 명확하다. 그가 오랜 기간 꾸준히 관찰해 온 대상인 ‘서울’, 보다 정확하게는 ‘서울의 공간’이다. 지난 20여 년간 그가 목격했던 서울,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서울, 재개발 과정 속에서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서울, 그렇지만 지금도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보편적인 도시의 모습들은, 서울을, 더 나아가서는 도시와 우리 삶의 조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선사한다.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 기록과 기억 사이
“내가 해온 서울에 대한 작업이란 결국 개인적인 서울에 대한 해석이고 아카이브이다. 그리고 그 아카이브는 서울에 대한 작업을 한다는 의식 없이 만들어졌다.”
– 강홍구, 「서울 이상한 도시」
‘기록성’은 사진이 지닌 필연적 속성이다. 하지만 작업 초기부터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 합성을 시도해 왔던 강홍구에게 사진은,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조작이 가능한 이미지의 연장이었다. 그렇기에 2000년대 초반부터 이십 년 이상 촬영해 온 불광동과 은평 뉴타운 사진 또한, 사진의 기록성과 허구성을 충돌시키려는 그의 계획 안에서는 그저 ‘작업용 이미지’에 가까웠고 말이다.
섹션 1 ‘강홍구의 서울 아카이브’에서는 1990년대 후반의 초기작부터 2010년대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 안에서 ‘서울’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연대순으로 살펴본다. 1985년 대학생 시절 제작했던 ‘서울 1985’를 다시 제작한 작품부터 연작 ‘사라지다-은평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2010)에 이르기까지, 서울은 강홍구의 작품에서 배경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다가 점차 작품의 주제로 전면에 부각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10여 년간 촬영한 불광동 재개발 지역, 20여 년간 촬영한 은평뉴타운 재개발 지역 사진들은 작품을 위한 소재로서의 이미지였으나,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그의 사진은 돌연 전혀 다른 맥락으로 옮아가게 된다. 재개발로 인한 도시 공간의 변화와 재편 현상을 관찰한 기록으로서의 위상이 주어졌고, 증거력과 기록성을 띠게 된 것.
이번 전시에서는 ‘기록성에 반하는 사진’을 찍으려던 초기 의도와는 사뭇 다르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의 사진이 갖게 된 ‘기록물로서의 가치’에 주목한다. 대규모 재개발 과정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낡은 골목길과 집들을 포착하고,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기에 그가 기록한 서울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인문, 사회, 건축 분야로까지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가 확장된다.
기록에서 기억으로: 다시 그린 도시와 남겨진 여백
“사진은 뭔가 뻔뻔하고 공식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진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듯 보이게 하고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사라진 집들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 오마주 등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사진에 색을 칠해 보기로 한다. 흑백 프린트를 하고 그 위에 색을 칠해 사진과 그림 사이, 사진도 그림도 아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보는 것.”
– 강홍구, 「그 집」
섹션 2 ‘기록에서 기억으로’에서는 사진에 회화를 접목한 매체 실험이 두드러진 두 연작 ‘그 집’(2010)과 ‘녹색연구-서울-공터’(2019)에 초점을 맞춘다. 섹션 1에서 보았듯 ‘미키네 집’에서 시작해 ‘사라지다-은평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에 이르기까지 강홍구의 사진은 점차 기록으로서의 성격이 짙어지는 궤적을 그려 왔다. 하지만 연작 ‘그 집’과 ‘녹색연구-서울-공터’는 다소 결이 다른 변주를 보여준다. 컬러 사진을 흑백 이미지로 바꾸고 프린트한 뒤 아크릴 물감을 채색해 매체적 변모를 꾀하며, 사진과 회화 사이를 파고든다.
공식적인 기록 어디에도 흔적이 남지 않은 재개발 지역의 철거된 주택을 기념한 ‘그 집’과 서울에 남아 있는 공터와 공터에 우거진 무성한 초목을 포착한 ‘녹색연구-서울-공터’는 일견 기법만 유사할 뿐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전시에서는 서울의 서로 다른 공간을 주제로 한 이 작품들을 병치함으로써 재개발로 사라진 집과 아직 재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빈터가 갖는 공통의 운명, 즉 도시의 모든 공간은 잠재적으로 재개발 지역이고 권력과 자본의 사회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환기한다.
한편, 촬영한 사진 위에 그림을 덧그리는 행위는 작가가 사진의 기록성과 객관성을 누그러뜨리고 본인이 경험한 느낌과 인상을 덧입혀 기록에서 기억으로 선회하는 가운데 사진 매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그의 오래된 반성적 성찰을 드러낸다.
예술을 통한 도시의 기억
작가의 작품은 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어긋나게 이어 붙인 형태이다. 잘 담아낸 서울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이내 이음새가 만든 균열에 시선을 빼앗긴다. 이는 급격한 재개발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의 의미에 주목하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서울을 해석하기 위함이다. 또한, 작가가 기록한 서울은 보편성을 가지며, 도시와 인간의 복잡한 관계를 예술적으로 조명했다. 때문에 미술의 경계를 넘어, 인문, 사회, 도시, 건축 분야에서 함께 다룰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시립미술관은 이러한 논의를 더욱 활성화하고 아카이브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다양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철학, 문학, 미술,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창작자가 강홍구 컬렉션에 대한 연구와 해석을 통해 컬렉션에 대한 ‘두텁게 읽기’를 제안하는 강연 프로그램, 강홍구가 인터뷰어로 관람객이 인터뷰이가 되어 각자 경험한 서울의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프로그램, 작가와 함께 작품의 배경이 된 은평뉴타운 지역을 답사하는 프로그램 등이다. 전시 관람 일정, 연계 프로그램 진행 일정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제공 /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 전경 ©김상태 / 작품 이미지 ©강홍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