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하나어린이집
에디터 정호연 글 황혜정 편집 조희정
자료제공 SSK 건축사사무소
목재 루버와 화이트가 어우러진 정갈한 색감이 반짝이듯 주변까지 밝힌다. 투명하게 열린 입면들을 투과해 안팎을 오가는 햇볕이 순백색의 실내 공간을 더욱 환하게 증폭시킨다. 낮에는 목재 루버가 백색의 벽면과 바닥을 캔버스 삼아 짙은 명암을 그리며 깊은 공간감을 연출하고, 밤이면 투명한 유리창과 목재 루버들 사이로 번져 나오는 조명이 어둔 마을을 밝히는 거대한 등불이 된다. 고밀도의 어둡고 노후된 도심지를 여유롭고 해맑은 존재감으로 똑똑 노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육 시설이라는 상징성과 정체성이 선명하게 전해진다.
서울에 처음으로 신축되는 하나금융그룹의 보육 시설이다. 대지 전면에는 1차선의 좁은 도로가 지나고, 그 외의 세 면은 노후된 상가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육 시설이라는 특성상 채광과 환기가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다닥다닥 붙은 인접 건물들로 인해 쾌적한 정주 환경을 구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계가 추상적인 건축 어휘나 이론에 치우친 건축 담론을 실험하기보다는 철저히 실증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노후 주거 밀집 지역의 불합리함을 해소하고 효율적인 공간 배치를 우선시하기 위함이다. 궁극적으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으로 실증 가능한 방법론에 근거하여 고밀도 도심지에서의 한국적인 지속 가능한 환경 적응 건축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남측에 자리한 계단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계단실은 높은 층고의 아트리움 형식을 갖추고 있어 인접 건물로 인해 자칫 부족할 수 있는 채광과 환기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 지층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실 전체가 자연광을 모으는 광정이자 빛을 내부 깊숙이 끌어들이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한다. 조석으로 달라지는 하늘의 빛깔, 정서, 날씨, 계절 등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면서 생동하는 갤러리처럼 기능하기도 할 것이다.
동서 방향으로 투명하고 환하게 개방된 파사드를 통해서는 상호 통풍이 이루어진다. 덕분에 특정화된 건물 주변과의 한정된 관계 안에서 생겨나는 미기후Microclimate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 가능하다. 정면과 측면에 가늘고 길게 장착된 수직 루버는 조밀한 땅에서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또한, 이동 가능한 루버 프레임은 비상 시 소방관의 진입을 돕는다. 모두 능동적이고 혁신적인 건축 방법론이 세심하고도 실증적으로 적용된 경우다.
공공 건축물이 수준 높은 가치로 평가되는 데 필요한 것은 값비싼 재료나 복잡한 디테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적인 재료, 현실적인 디테일로 얼마나 현명하게 현실적 제약들을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시도와 고민들이 공간을 전용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쾌적한 정주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실증적으로도 보육 시설로서의 정체성을 충실히 이행 중이다.
작품명: 응암하나어린이집 / 위치: 서울시 은평구 가좌로 7다길 3 / 설계: SSK 건축사사무소 (김수석) / 용도: 노유자 시설 / 지역지구: 도시지역, 제2종 일반주거지역 / 대지면적: 245m² / 건축면적: 146.9m² / 연면적: 388.2m² / 규모: 지상 3층 / 구조: 철근콘크리트 / 주차: 2대 / 완공: 2024.1. / 사진: 이남선, 송유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