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필름
에디터 현유미 부장 글 황혜정 편집 조희정
자료제공 공기정원
저 멀리 강물을 따라 기차가 지나간다. 강둑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강물처럼 가만가만 흘러가는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너머의 진짜 강물은 비파 소리를 내며 물길을 내고 있다. 흐르는 물이 주변을 평온으로 덮는 듯하다. 해질녘의 하늘이, 아니 노을이 땅과 물을 한 번 더 평온하게 덮는다. 건축 밖 풍경이 단편영화의 한 장면 장면으로 치환되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바로 앞에 금호강이 흐르는 경북 경산 땅에 위치한다. 터가 살짝 내려앉아 있어서 주변으로 펼쳐진 풍경은 기대보다 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연스레 시선을 멀리 두게 된다. 시야가 넓어지면서 각기 다른 풍경들이 동시에 펼쳐지고 겹쳐지면서 연출된 것 같은 풍경들이 실시간으로 공간 안으로 스며든다. 마치 하나의 공통된 주제 아래 여러 단편을 모아 놓은 옴니버스 구성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그 첫 번째 이야기가 금호강을 따라 지나가는 기차에서 시작된다.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기차역을 상기시키듯,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의 건축 매스는 멀리서도 한눈에 인지된다. 실제로 A 매스에서는 높은 천장과 세로로 길게 나 있는 창으로 인해 기차역사와 같은 공간감이 느껴진다. 역사처럼 출입구 또한 다양하게 나 있어서 공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구조다. 메인 바와 베이커리 공간에서는 개찰구 감성이 전해지고, 역사 내의 약속 장소로 상징되는 시계탑에서는 디지털 감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일명 ‘뚝방길’로 불리는 ‘둑길’이 두 번째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제다. 강을 따라 나 있는 둑길은 걸음을 통해 사람과 사람, 도시와 자연, 일과 쉼, 공간과 공간,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곳이다. 건축물의 외내부를 구분하지 않고 마치 하나의 연속된 길처럼 이어져 흐르는 전개 방식을 통해, 이 장소성을 부각하고 있다. 덕분에 이곳저곳을 거닐어 보면 자유롭게 순환하는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유유자적하게 대지를 가르며 흐르는 금호강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빛이 부서지듯 비치는 강물의 표면, 이른 아침의 물안개, 떨어지는 빗방울로 물이 물을 덮는 광경, 단순한 물의 흐름 너머로 보이는 역사의 물줄기, 많은 것을 사색하게 만드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 흐르는 물결을 대지 위로 끌어 올리고 있다. 대지를 나지막하게 덮고 있는 수공간이 그러하다. 수공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흐르는 물결 속에서 감각적이면서도 평온함을 보게 된다. 특별히, C 매스에는 비가 내리는 것 같은 낙수 공간이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날씨와 상관없이 항상 비가 온다. 심지어 하늘이 환하게 맑은 날에도 빛과 비가 오묘하게 뒤섞인 채 내리는 곳이다. 빛줄기인지 빗줄기인지 알 수 없는 그 사이를 걷는 경험은 영화처럼 특별할 수밖에 없다.
옴니버스의 마지막은 해질녁 노을이 맡고 있다.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찰나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장치가 A 매스의 천창이다.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시간대에 따라 벽면에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 낸다. 빛으로만 연출되는 이 장면은 낮과 밤의 아름다움을 모두 담아내고, 찰나의 순간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C 매스 서향의 전면 유리창은 해질녘이면 자동으로 커튼을 연다.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는 장면이 극적으로 펼쳐지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서 있는 듯 느껴질 정도다.
작품명: 인필름 / 위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금호강변로 690 / 설계: 공기정원 / 시공: 건축_우석종합건설; 내부_공기정원 / 조경설계: 동서플렌트 / 건축주: 박현옥 / 용도: 카페 / 대지면적: 2,899m² / 건축면적: 654.38m² / 연면적: 434.99m² / 건폐율: 12.20% / 용적률: 15% /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 높이: 11.3m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 주차: 48대 / 외부마감: 벽돌 /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대리석, 도장, 벽돌 / 설계기간: 2020.1.~4. / 시공기간: 2023.3.13.~2024.2.20. / 완공: 2024 / 사진: 박우진